소록도 지케이<慈恵>의원 자취. (촬영=1995년 3월)

 

 

소록도 지케이<慈恵>의원 시대 = 아직 소록도 동쪽 약 2/3는 민유지이며, 농업ㆍ어업에
종사하고 있는 도민들이 살고 있었고, 서생리 등 일부지역(1/3)이 소록도 지케이의원이
소유한 관유지였다.

그 서생리에, 창설기의 소록도 지케이 의원의 의무실ㆍ사무실이 있고, 그 당시의 건물이 개수되었다고는 하나, 그 당시의 모습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그 건물 근처에는 제 2대 원장인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현창비」가 세워졌다.


  「하나이 젠키치<花井善吉> 원장 창덕비」


하나이 원장 창덕비의 뒷면이다.
배경에는 소록도 지케이의원이 창설된 시기의
「치료본관」이 보인다. (촬영=1995년 4월)


소록도 지케이의원의 의무실ㆍ사무실에서 해안을 향해 당시의 건물 폐허들이 늘어선다.

  파인 「큰 우물」을 지나 내려가면, 해안에 이른다.

 


일찍이 서생리의 「어장」이었던 해안이다. 수용된 환장들이 그물 따위를 사용하고 고기잡이를 했다. 환자 강제노동 가운데 하나이다.

翻訳:天飛龍 氏


blog「滝尾英二的こころ」